LarryEl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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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심리웹진 구냥 제5호 발췌



Lawrence Joseph Ellison. 1944년 생. 주식 가치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창업주이자 CEO.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와 함께 IT 업계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인물. 업계에서 빌 게이츠와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이긴 하지만, 실제론 빌 게이츠와 비슷한 사업 운영 방식을 보인 사람이었음. 빌 게이츠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게이츠와 같은 년도에 회사를 설립했으며, IBM을 발판 삼아 급부상했고, 갖가지 부도덕한 사업 전술로 시장 독점력을 유지할 수 있었음. 그러나 빌 게이츠와는 달리 무척 “화려한” 개성과 급진적 성격을 지닌 인물로 주로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방자한 언행, 수천만 달러짜리 자가용 비행기와 요트, 기이한 연애 행각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곤 함.

살 때 먼 친척에게 입양돼 자람. 학창시절 자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수업은 아예 듣질 않았음. 하루는 라틴어 교사가 "이번에 또 라틴어 수업에 낙제하면 인생을 망칠지도 몰라"라고 으름장을 놓자, 앨리슨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함. "그깟 옛날 글자 때문에 인생을 망쳐요? 아닐 거 같은데요. 전 이 다음에 신부가 될 건 아니니까 라틴어는 배울 필요 없어요."



사실을 부풀려 이야기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음. 시카고 대학에 한 학기만 다니다 말았으나, 친구들에겐 의과 대학에 들어갔다는 거짓말을 함. 심지어 거짓말을 보충하기 위해 위조 학생증까지 만들었음. (당시 다른 IT 업계 거부 CEO들은 대부분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그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았으나 엘리슨은 유독 학위가 없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꼈다고 함.)



낭비벽이 심했음. 20대에 1천 달러짜리 레이싱 자전거와 3만 달러짜리 보트를 사기도 했음. 그리고 코 수술까지 했는데, 코 수술을 비버리 힐즈 제일 가는 성형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림. (그는 어릴 때 농구를 하다가 코를 얻어맞아 모양이 좀 이상했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재능을 보였음. 은행, 보험회사, 중소기업 등을 전전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렸음. 업계에선 꽤 인정 받는 프로그래머가 된 앨리슨은 코드명 "오라클"이라는 비밀 프로젝트 아래 CIA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주기도 했음. 오라클이라는 코드명은 이후 그가 설립한 회사의 이름이 됨.

1976년, IBM의 E. F. 코드(Codd)가 발명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elational database)의 개념이 발표됨.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아이디어는 IBM에 의해 도입돼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밍 언어 SQL의 탄생을 가져옴. SQL은 기업이 어떤 제품이 언제 가장 많이 팔렸는지, 누가 어떤 제품을 언제 가장 많이 팔았는지 등의 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입출력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컴퓨터가 세계 산업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프로그램이었음.



SQL은 또한 래리 엘리슨라는 사람의 운명을 바꾼 프로그램이기도 했음. 앨리슨은 IBM이 발표한 이 프로그램의 개념을 보자마자 이것이야말로 컴퓨터 산업의 역사와 자신의 운명을 바꿔줄 것이라 생각, 1977년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고 자신들이 IBM보다 먼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로 결심함.



1979년 IBM보다 3년 먼저 최초의 상업화 된 SQL 프로그램, 오라클(Oracle)을 출시. 당시 오라클의 사명은 릴레이셔널 소프트웨어-Relational Software였으나, 이후 회사명도 "오라클"로 변경함. 오라클은 자신들이 최초의 상업용 SQL 소프트웨어로 시장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보았고, 1980년대 SQL이 데이터베이스 언어의 업계 표준으로 굳어지면서 오늘날 전세계 1위의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생산 기업으로 자리잡음.



당시 엘리슨은 시장 선점만이 회사가 살아 남는 길이라는 점을 간파함. 이때부터 오라클은 전설적으로 무자비한 마케팅/영업 전술을 발휘한다. 엘리슨은 영업부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일단 밖에 나가면 계약을 따올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는 식으로 직원들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영업 실적이 좋은 사원에겐 나이, 지위, 경력을 막론하고 최고 대우를 해주었다.

당시 오라클은 시장 선점을 위해 고객에게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일단 계약을 맺기 위해 없는 기능을 덧붙이기도 하고, 성능을 과장하거나, 유지 비용을 속이기도 했다. 물론 이 때문에 수많은 기업 고객들로부터 소송이 잇달았으나 오라클은 영업에 투자한 만큼 법적 대응을 위한 준비도 철저히 해 두었다. 결과적으로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는 당시 가장 강력한 경쟁사였던 잉그레스(Ingres)를 제치고 사실상의 업계 표준으로 부상했고, 오라클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당시 오라클은 분명 부도덕한 기업이었으나 그 덕분에 시장 경쟁에서 살아 남았고 오늘날 4만 명 이상의 인력을 먹여 살리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남. 게다가 이후 세계 최초의 웹 기반 데이터베이스, 세계 최초의 유닉스/리눅스 기반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데이터베이스 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함.

2000년 한때 개인 소유 주식 가격이 800억 달러를 넘어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진 인물이 되기도 했음.




앨리슨 역시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회사보다는 CEO의 "브랜드"가 더 잘 알려진 경우다. IT 업계 CEO 중 가장 화려한, 가장 주목 받는 삶을 사는 인물 중 하나인 그는 주로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오만 방자한 언행, 수천만 달러짜리 자가용 비행기와 요트, 기이한 연애 행각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곤 함.



빌 게이츠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반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의 거물로 통하고 있음. 개인적으로도 라이벌 관계이며, 사업적으로도 오라클은 인터넷의 확장에 기반한 사업이기 때문에 데스크탑 PC에 기반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기업 이익과는 본질적으로 상충될 수 밖에 없음.



엘리슨은 빌 게이츠와 성공 배경이 매우 비슷한 인물이었음. 그 역시 빌 게이츠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게이츠와 같은 년도에 회사를 설립함. 그리고 IBM을 발판 삼아 급부상했고, 갖가지 부도덕한 사업 전술로 시장의 독점력을 유지할 수 있었음. 다만 빌 게이츠는 개인 PC 사용자에, 엘리슨은 비즈니스 사용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달랐음.



(마지막 변경 UNIX clock : 1149599611 / Common clock 2006.06.06, 10:13 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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