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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록(泛海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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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16년(1638, 인조16) 9월, 바다를 유람하였다.
신해일, 옛 삼천진(三千鎭)에서 숙박하고 새벽 밀물을 이용해 바다로 들어가니 바다 위로 두어 길 정도 높이에 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뱃사람이 서쪽으로 노량해협(露梁海峽)을 가리키면서 남쪽 해안에는 충민사(忠愍祠)가 있고 그 앞에 남해대전비(南海大戰碑)가 있으며, 또 북쪽 해안에는 만력(萬曆) 연간에 왜군을 정벌한 명나라 장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수군 도독(水軍都督) 진린(陳璘)이 이곳에 주둔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새벽에 창선도(昌善島)에 정박하였다. 이때에 새벽 기운이 부옇게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동방에 별이 하나둘씩 희미해져 갔다. 날이 밝은 뒤에 바라보니 이 모든 것이 고기잡이배의 횃불과 소금 굽는 연기였다. 섬은 두 개로 나뉘어 있는데 동쪽의 섬은 흥선도(興善島)라 하고 서쪽의 섬은 창선도라 하였다. 산에는 소나무와 산초나무가 많이 자라며, 태복시(太僕寺)에서 이곳에다 감목관(監牧官)을 두어 말을 기르고 있다. 섬 안의 땅은 비옥하여 수확이 잘되었고 밭두둑에는 모두 울타리를 쳐서 말들로 인해 곡식이 해를 입지 않도록 방비하였다.
무리를 지은 말 떼를 만났는데 각종의 훌륭한 말들이 많이 보였고, 산속으로 달아난 말 가운데에도 준마가 많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 가운데 신마(神馬)가 있어 운무(雲霧) 사이로 왕왕 그 모습을 보인다고도 하였다.
저녁에 다시 배에 올라 남해의 제암(梯嵒)에 정박하였다. 그곳 사람들은 배를 집 삼아 살고 잠수를 잘하여 조개를 잡아 생활하는데, 누더기 옷에다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나충지(臝蟲誌)》에서 이른 단만(蜒蠻)에 해당되는 미개인들로서 그 성질이 변덕스럽고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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