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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江陵)에 성은 이씨(李氏)이고 이름은 전손(傳孫)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집 담장 사이에 큰 뱀이 구멍을 뚫어놓고 때로 뜰에 나와서 꾸불꾸불 서리고 있었는데 차저(次且)는 고문(古文)에 자저(趦趄)이다. 그 모양이 이상스러웠다. 이전손이 보기 싫어 지팡이로 때려 쫓아 버렸다. 뱀이 쫓겨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서너 번을 거듭하니, 이전손이 화가 나서 담장 구멍을 파헤치고 기어이 쫓아버려 뱀이 밭 사이 풀을 쌓아둔 무더기 속으로 들어갔다. 이전손이 그곳에 불을 질러 풀무더기를 태워버렸다. 생각하기를 불이 뜨거우면 뱀이 반드시 딴 곳으로 달아날 줄 알았으나 뱀이 그 속에 엎드려 있다가 타 죽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뭇 뱀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빙빙돌다가 목을 들고 그 불에 타 죽으면서 마치 비분한 뜻이 있는 듯하더니 무려 수백 마리의 뱀들이 불에 들어가 죽었다. 이전손이 그제서야 그 신령스러움을 깨닫고는 놀라고 뉘우쳤다. 이로부터 가산이 날로 줄어들었다. 이전손이 매양 말하기를, “이것은 뱀을 태워 죽인 보복이다.” 하였다. 그 뒤에 이전손이 과거에 급제하기는 했으나 벼슬은 크게 못하였다. 뱀이 비록 독물이지만 그것에도 남이 뺏지 못할 천성이 있어서 큰 뱀은 군장(君長)이고 뭇 뱀들은 신하와 종들인 것이다. 신하 뱀들이 임금의 재난에 와서 죽는 것을 마치 자기 집에 돌아가듯이 쉽게 하니 전횡(田橫)의 의사(義士)인들 어찌 이보다 훌륭할 수 있으리오. 큰 뱀이 죽으면서 달아나지 않은 것은 정말 모를 일이다. 뱀들도 나라를 위해서 죽고 영토를 지키는 의리가 있어서 그러했는가. |